이번 포스팅에서는 미만성 범세기관지염(Diffuse Panbronchiolitis, DPB)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DPB는 주로 동아시아인에게서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폐질환으로, 말단 세기관지(bronchiole)에 염증이 미만성으로 퍼지면서 진행성 호흡부전을 유발하는 희귀 질환입니다.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적극적 치료가 매우 중요한 병이기도 합니다.
역학 및 원인
DPB는 1960년대 일본에서 처음 보고된 질환으로, 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호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0만 명당 11명 정도의 유병률을 보이는데, 한국과 중국에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매우 드물어, 미국에서의 유병률은 10만 명당 0.1명 미만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편차로 인해 DPB의 원인으로 유전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HLA-B54와 같은 특정 유전자형과의 연관성이 밝혀졌고, 가족 내 발병 사례들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유전 양상을 보이지는 않아, 유전 요인 외에도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DPB 환자의 기관지 조직에서 Pseudomonas aeruginosa나 Haemophilus influenzae와 같은 세균이 높은 빈도로 검출되는 것으로 미루어, 만성 세균 감염이 병인에 관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세균이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병태생리
DPB의 핵심 병리 기전은 말단 세기관지 및 호흡세기관지(respiratory bronchiole)에 림프구와 형질세포가 침윤되면서 벽이 비후되고, 점액으로 인해 내강이 좁아지거나 폐쇄되는 것입니다. 세기관지는 직경 2mm 이하의 작은 기도로, 폐포(alveoli)에 공기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이곳에 염증이 생기면 공기의 흐름이 방해받아 환기 장애가 초래되고, 결국 저산소증과 호흡부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DPB 병변의 분포가 '미만성(diffuse)'이라는 것입니다. 기관지 확장증이나 폐기종 등의 다른 만성 폐질환에서는 주로 대기관지나 폐 실질에 국한된 변화를 보이는데 반해, DPB에서는 양측 전폐야에 걸쳐 세기관지 염증이 미만성으로 퍼져있습니다. 이는 방사선학적으로는 깨끗해 보이는 폐에서도 조직학적으로는 심한 병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DPB의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병인론적 관점에서는 과도한 면역 반응이 염증의 근간을 이룰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기관지 조직 검사에서 CD8+ T 림프구의 침윤과 IL-8, MCP-1과 같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과발현이 관찰되는 점은 세포 매개성 면역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호중구의 침윤과 호중구 탄성분해효소(neutrophil elastase)의 증가는 DPB의 조직 파괴를 설명하는 기전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임상증상 및 진단
DPB는 만성적이고 진행성인 경과를 보입니다. 초기에는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의 비특이적 호흡기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병이 진행함에 따라 점차 심해지면서 일상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됩니다. 청진 소견으로는 양측 폐하부에서 수포음(crackle)이 들리는 것이 특징적이며, 말초 폐야에 염증이 심한 경우에는 곤봉지(clubbing finger)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흉부 X-ray에서는 초기에는 정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병이 진행하면서 양측 폐하부에 다발성 결절성 병변이나 과립상 음영(granular opacity)이 나타나게 됩니다. 고해상도 CT에서는 양측 폐하부를 중심으로 중심소엽성 결절(centrilobular nodule), 기관지벽 비후(bronchial wall thickening), 모자이크 관류(mosaic perfusion) 등의 소견이 관찰되며, 이는 소기도 병변의 분포를 잘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방사선학적 소견만으로는 다른 미만성 폐질환과의 감별이 쉽지 않기 때문에, 확진을 위해서는 조직학적 진단이 필요합니다. 기관지 내시경을 통한 경기관지 폐생검(transbronchial lung biopsy)이 선호되는데, 전형적인 병리 소견으로는 기관지 주위 간질의 염증세포 침윤, 세기관지 상피의 편평상피화생, 폐포벽의 비후 등이 있습니다. 또한 기관지폐포세척액(bronchoalveolar lavage fluid) 검사에서 호중구 분율이 증가되어 있는 것도 진단에 도움이 됩니다.
치료 및 예후
DPB의 치료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는데, 하나는 기도 염증을 조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치료의 근간은 마크로라이드(macrolide) 계열 항생제의 장기 저용량 투여입니다. Erythromycin, clarithromycin, azithromycin 등의 14원형 마크로라이드 항생제를 하루 200-600mg 용량으로 수개월에서 수년간 사용하면 임상증상, 폐기능, 영상 소견 등에서 현저한 호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효과는 항균 작용보다는 면역조절 작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마크로라이드는 NF-kB 활성 억제, IL-8 분비 감소, 호중구 탄성분해효소 조절 등을 통해 과도한 염증반응을 차단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P. aeruginosa*에 의한 만성 기도 감염이 동반된 경우에도 내성에 상관없이 마크로라이드 치료가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더불어 급성 악화 시에는 적절한 경험적 항생제 치료가 필요합니다. 객담 배양 검사에서 동정된 균주의 감수성에 따라 항생제를 선택하되, 흔한 원인균인 *P. aeruginosa*를 포함하여 그람음성균을 광범위하게 포괄할 수 있는 항생제가 추천됩니다. 아울러 평소에도 흡입용 항생제, 점액용해제, 체위배액 등을 활용한 기도 청결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DPB의 자연 경과는 매우 불량하여, 초기 보고에 따르면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50% 미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마크로라이드 치료가 도입된 이후 예후는 극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적절한 치료를 받은 환자의 10년 생존율은 90%에 이릅니다. 다만 진단 당시 이미 호흡부전이 동반되었거나, 폐고혈압 등의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에는 여전히 예후가 나쁜 편입니다. 따라서 조기에 진단하여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장기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맺음말
지금까지 미만성 범세기관지염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DPB는 말초 기도에 염증이 퍼지면서 서서히 폐기능을 잃어가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호흡곤란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숨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DPB는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한다면 대부분 잘 조절할 수 있는 병입니다. 마치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을 보는 것처럼, 꾸준한 마크로라이드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가느다란 폐 속 통로에 염증이라는 불청객이 기어들어 숨길을 막아버리는 DPB. 하지만 의학의 힘으로 다시 그 길을 열어젖히고, 깨끗한 공기가 드나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의료진이 해야 할 소임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DPB를 포함한 희귀 폐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더욱 발전하여, 숨쉬기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자유로운 호흡을 선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한 폐로 맑은 공기 마시며,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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